휴무일 마지막날 새벽 네시에 집을 나섰으니
한참을 다니고 몸이 지처 가는데도 겨우 오전 열시다.
일찍 일어나니 하루가 엄청 길고 시간도 더디게 간다.
새벽의 어두운 구름이 걷히고 흰구름으로 바뀌었다.
남양주의 옛 능내역에서
정약용선생 기념관으로 가는 고개 길의
야산 산중턱에서 우측으로 접어들면 호젖한 숲길이 나온다.
비포장 도로로 되어 있고 차와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으니
고요하고 한적하며 새소리 들으며 산책하기에는 그만이다.
노부모를 모시고 산책 하시는 분을 만나고...
노랑물봉선은 귀한데 이곳의 숲길 가에는 지천으로 널려 있다.
길을 따라 약 이십여분 정도를 걷다 보면 아조타 농원이 나온다.
여러번 지나 다니며 보던 곳이고
아담한 집과 파란 잔디 정원과 꽃이 좋은데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 갈 수도 없고 멀리서만 처다보며
저런 집을 예쁘게 가꾸며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오늘은 이 집의 주인분께서
꽃에 진딧물이 생겼다며 농약을 뿌리고 계셨다.
백일홍과 과꽃이 보이길래 꽃을 찍고 싶다고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반가워하시며 들어와서 찍으라 하신다.
아조타 농원의 의미는 그냥 "아!! 좋다."라는 감탄사의 뜻이라고...
울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달려오며
쪼을 것 같은 자세로 이뿌지도 않은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반겨주는 녀석은 거위다.
전혀 겁내는 기색이 없고 오히려 이뿌다며
손을 내미니 머리를 아래로 숙이는 게 복종을 표하는 것 같다.
아마 겁을 내거나 도망을 가면 더 사납게 달려드는 눔들이다.
이 녀석들과의 기 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잘 가꾸어진 남의 집에 들어와서
사진을 찍는 것만도 황송하고 고마운데
"손님이 오셨으니 차나 한잔 하십시다."
하시며 의자 까지 펴시고 금방 따뜻한 커피까지 손수 타다 주신다.
커피 한잔 하며 담소를 나누는데
조금 전까지 나를 적대시 하던 거위 녀석들이 재롱을 떨고 있다.
올봄에 병아리를 사와서 키운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이 거위 녀석들은 자기들이 백조로 착각하고 있는듯 하다.
프랑스의 부리짓 바르도 아줌마는
우리나라가 보신탕을 먹는다고 아우성을 치는데
프랑스 사람들은 이 거위들의 간을 포아그라라하며
잔인하게 못살게 굴고서 잡아야 간이 커진다며 많은 스트레스를 가하고
그 간을 최고의 등력제로 여긴다고 하니 자신들의 허물은 모르는 듯하다.
집에서 놓아 기르는 닭이
어느날 병아리를 까서 데리고 나타났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많이 보아서 신기하지 않았는데
오랫만에 어미닭이 벙아리를 데리고 다니는 걸 보니 신기하다.
처음에는 일곱마리였었는데
어느날 세마리가 다른 짐승에게 물려갔다고...
꽁지의 긴털이 빠져서 몰골이 위엄이 없어 보이는
이 녀석은 암컷들을 위해서 잠시도 나를 감시 하기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요 녀석은 기어코 고추 널어 말리는 곳에서 말썽을 피우고...
어는 곳이나 아주 깨끗하게 정돈이 되어 있고....
과꽃과 백일홍이 곱게 피었다.
아마 이런 집을 이렇게 가꿀려면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오랫동안 교직에 계시다가
은퇴를 하시고 이곳에 머물며
자연을 벗삼아 지내시니 마음도 여유로우시고
늙지도 않으시는 것 같고 이렇게 살아가시는 모습이 부럽기만하다.
거위가 백조같이 춤을 추어도
닭이 말린 고추를 쪼아도 느긋하게
미소지으며 바라 보시는 모습도 부럽고...
야외로 다니며 꽃씨 받아 놓은 게 있는데
다음에 방문할 때는 선물로 드려야겠다.
이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물 가족들도 좋은 주인을 만나 천수를 누릴 것 같다.
오늘도 멋쟁이 어르신을 사귀고 차까지 얻어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가의 연밭에는 백련 한송이가 곱게 피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