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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사를 했습니다.
석가탄신일인 어제 참으로 이상한 이사를 했습니다. 결혼한 지 15년째 되니 살림살이도
많이 늘었습니다. 많은 살림살이 중에서 김치냉장고와 옷이 든 서랍장 하나만 들고 어머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머님은 큰형님과 같이 사십니다. 조카 둘이 있는데 큰조카는 군대
가 있고 작은조카는 대전에 있는 대학의 기숙사에 있어서 노는 방 두 개에 우리 식구들이
밀고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단출하게 몇 가지 기재도구만 들고 들어가고 나머지 짐은
이삿짐센터에 하루에 8000원씩 세 달 가까이 맡기기로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살았던 집은 전셋집이었습니다. 8월이면 분양받은 아파트로 입주하는데 살고
있는 주인한테 그 때까지만 살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으나 오월이라야 집이 들고나고 하는 것이
수월하다고 무조건 빼라는군요. 그 동안 집값이 많이 올라서 차액만큼 삯월세로 내겠다고
해도 싫다고 하는군요. 세상인심이 내 마음 같지 않더군요. 야박하다고 욕도 많이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다 욕을 하는군요.
넉넉잡고 석 달 동안 살 집을 구해볼까도 생각해 보았으나 마누라가 그냥 어머님 집으로
들어가자고 하더군요. 그리고 들어가서 어머님께 효도할 기회를 준다고도 하는군요.
기특한지고........
짐을 싸 보내고 어머님 집으로 들어가니 어머님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형님 내외와
셋이 살다가 갑자기 식구가 많아지니 사람이 사는 것처럼 왁자해져서 큰소리도 나고
웃음소리도 더 많아지니 우선 조용하던 집이 활기가 넘치는 것 같더군요. 이런 날은 축배를
들어야지요. 이사를 한다니까 매형도 달려왔으나 옮길 짐이 없는 관계로 같이 축배를 들게
되었습니다. 일차로 막걸리를 마시고 휴일이라 큰형님은 친구들과 속초에 갔다가 회를 사가
지고 와서 이차로 소주를 하였지요.
잠을 자려고 조카가 쓰던 침대에 누웠는데 와이드 싱글의 침대이지만 좁더군요. 밤새
마누라와 자리다툼을 벌이다가 깼습니다. 그러나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편하게
생활하다가 동생인 저희가 어려운 부탁을 해도 언제나 ‘Yes'인 형님과 형수는 더
불편하겠지만 오히려 출근길에 큰딸을 학교까지 태워다주니 역시 형만한 아우는 없습니다.
형수도 마음이 넓어 모든 걸 다 이해하고 오히려 불편해 할까봐 애쓰는 모습입니다.
다들 나가고나니 마누라가 청소며 빨래며 바쁘더군요. 할 일을 끝내고 나머지 일처리
하러 가려고(놀기도 하겠지요)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싫지 않았습니다. 전에 사용하던
비데를 어머님 화장실에 달고는 사용법을 어머님께 일러드리고 출근을 하였습니다. 오는데
어제 보던 잡초도, 이름 모를 꽃들도 오늘은 유난히 이쁘게 보입니다. 그 간 종종 어머님을
찾아보기는 하였지만 가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마누라도 어머님께
마지막일지 모를 효도(부끄럽습니다만)를 할 수 있는 기회니 저보고도 잘 하라고 하면서
뛰어다니는 모습이 좋아 보입니다.
어머님이 가까이 계신다는 것이 이렇게 좋습니다. 어머님 젖을 네 살까지 먹었다던 제가
아직도 인간막내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이런 기분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너무도
정확한 사람(전에 살던 집주인)에게 오히려 감사하고 싶습니다.
어머님! 저희 육남매를 낳아 기르시고 가르치신 우리 어머님! 어머님은 그저 이 세상에,
이 세상에 계신 것만으로도 저한테는 행복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더 가까이 계셔서 기쁨을
주시니 고맙습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팔불출이라도 좋습니다. 우리 마누라한테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분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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