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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다녀와서
지난 한식 때 성묘 차 고향을 다녀왔다. 아버님 생전에 할아버지 산소 가토(加土)하느라
다녀오고는 처음인 것 같다. 그 동안 많이 변한 것 같다. 나 태어난 집도 누군가가 살지만
알 수 없는 사람이고 친구가 살던 집은 새로 집이 번듯하게 지어져 어느 대학 교수가
산다는데........
그 옛날 크게 보이던 감나무도 이제는 그저 그런 정도로 아담하게 보이고 담 밑에 자라던
감나무를 접붙여 감이 하나 열리던 나무도 어른 나무로 자라 있다. 고향은 정감어린 곳이라
아직도 마음이 편하다.
고향을 간다니까 어머님께서 꼭 다녀오라는 집이 있었다. 아래윗집에 살면서 어머님과
친구가 되신 먼갓댁이라는 택호(宅號)를 가진, 지금은 어머님처럼 할머니가 된 어른이다.
어릴 적엔 지도를 잘 그렸다. 그래서 다음날 꾸중을 듣기도 하였다. 다섯이나 여섯
살쯤의 겨울 어느 날 아침에도 지도를 그렸다. 어머님은 머리에 키를 덮어씌우고는
먼갓댁을 갔다 오라고 하셨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나는 손에 종지를 하나 들고 재미있게,
또 신나게 그 집에 갔다. 어떤 의미로 키를 쓰고 가라는 지도 모르고 덜렁덜렁 갔다.
먼갓 어른은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계셨다.
키를 쓰고 온 나를 보시더니 소금을 조금 주시면서 부지깽이로 쓰고 온 키를 마구
치신다. 그러면서 뭐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지금은 기억에 없다. 아마도 오줌을 싼 놈이니
혼 좀 나봐라, 왜 자꾸 오줌을 싸느냐 등등의 얘기였을 것이다.
키를 덮어쓰고 맞을 때 왜 맞는지도 모르니 무척이나 억울하고 화도 났다. 추운 겨울이라
손에 들고 있는 종지가 차갑고 손은 시려와 덜덜 떨면서 맞은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일이고
또 야단맞는 것이라 울음을 터뜨렸다. 종지에 소금을 얻어 가지고 울면서 오는데 앞집에
친구가 보았다. 소금의 의미도 모르던 때라 창피함은 없었으나 우는 내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던지 얼른 울음을 숨겼던 기억도 난다.
소금을 얻어오니 사촌 동생과 같이 소금밥을 먹게 되었다. 나 혼자 매 맞아가며 얻어온
소금인데 왜 같이 먹어야 하나 하는 어릴 적 생각도 기억난다.
먼갓 어른 집에 들어서니 댓돌 위에 두 켤레의 신발이 보였다. “계세요?” 하고 사람이
왔다는 기침을 하자 문을 열고 내다보시는 먼갓 어른은 못 알아볼 정도로 늙은 모습이다.
들어가 절을 올리고 누구라고 얘기하니 그제야 알아보고는 반기신다. 누구든 세월의 무게를
이기진 못하지만 먼갓 어른은 한 쪽 눈을 거의 실명하여 눈동자가 허옇게 변해서 오랜만에
보는 내가 거북해서 손으로 자꾸 가리신다. 나에게 소금을 주신 것처럼 이제는 내가 뭘
드릴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그렇게 똑똑하던 분도 늙어지니 안타까운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 중에 소금 얘기도 하고는 나오면서 미리 준비해간 작은 봉투를 내미니
오히려 같이 간 딸아이에게 돈을 주신다.
고향은 아직도 반겨줄 사람들이 있어 마음 한구석에서 떠나질 않는다. 고향엔 내 놀던 곳이 있고
앞산과 뒷산, 그리고 언제나 고향을 지키는 조상들이 있다. 고향이 있어서 참 좋다.
서울로 돌아오면서 과속해서 또 팔만 원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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