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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둑 이력
사촌형님 집에 바둑알 통이 서랍으로 된 바둑판이 있었다.서랍에는 매끈하게 달은
흰색의 조개껍데기와 검은색 작은 조약돌이 들어있었다.자연에서 얻은 흑백 갈등의
도구로 지금에사 느끼는데 신선들도 이런 바둑알로 두었을 것이다.
아버지 연배이신 종형(從兄)께서 가까이 사셔서 항상 또래인 조카들과 같이 놀면서
종형님께 바둑의 단수(일명 아다리)를 배워서 한 살 많은 조카와 싸워가며 바둑을
두었다.
그러다가 오학년이 되면서 서울로 전학을 왔다.두 형님이 바둑을 두는데 나는 실력이
모자라 잘 끼이지 못 하다가 작은 형님이 25 점을 깔으라고 해서 그렇게 두기 시작했다.
초속기로 두면서 연신 물려달라고도 하고 물려주기도 하면서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했다.
사실 지는 경우가 많았다.
중학교,고등학교를 거치면서 형님의 바둑 느는 속도보다 내가 더 빠르게 올라가 군대가기
전에는 네 점까지 내렸다.초보에서는 좀 더 빠르게 늘 수 있기 때문이다.먼 세월을
두고 형님과는 흑백갈등을 일으켜 왔다.지면 무지하게 약올라 하고 이기면 괜히 기분 좋고....
형님은 지고 있는 사람에게 약을 잘 올린다."죽은 자식 XX 만지기지","네가 져 주니까
대개 기분 좋다","오늘은 형님 대접해 주네.고맙다." 우와! 약 오른다. 그렇잖아도 열
받는데 끓네요 끓어.... '형님 아직 세월은 많이 남았습니다.기다리십시요'
바둑은 우주라고 했다.19줄 바둑이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똑같이 둔 바둑이 없는
것으로 안다.그래서 무궁한 우주와 같다.잘 두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성격까지도
파악한다고 하나 그 정도가 되려고 하면 많은 수양이 필요할 것이다.
군대를 갔다.일병을 달면서 여유가 생겨 비슷한 실력을 가진 네 사람과 바둑을 무지하게
많이 두었다.두다가 내기를 했다.1000원씩 5000원을 거둬 일등 3000원, 2등 2000원의
상금을 걸고 나머지는 손가락만 빠는 경기였다.당시 봉급은 3,4천원.비슷한 실력들이라
엎치라뒤치락 재미가 있었다.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독식한다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이렇게
거의 이 년을 보내고 제대를 하였다.
제대를 하고 "형님 바둑 한 판 두시죠" 제안을 했다.군대가기 전처럼 네 점 접바둑을
뒀다.접바둑에선 연속 세 판을 이기고 짐에 따라 한 점 올리고 내린다.그런데 내리 세 판을
이겨 한 점을 내렸다.
얼마 지나서 또 두었다.석 점 깔고 내리 세 판을 이겨 또 한 점을 내리게 되었다.
형님이 군대가서 고생했다고 마구 져주시는 것 같다.이런 고마울 데가 있나?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내리 세 판을 이겨 맞두게 되었다.
예전에 형님이 그랬던 것처럼'형님 져 주시니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해야 하나.
지는 사람의 입장이 많이 되어본 내가 어찌 형님께 이런 말을 하여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겠는가?
이젠 맞두고 내리 세 판을 이겼다.아 얼마나 기다렸던가?
"형님 이젠 알 바꾸시죠!"
"나 요사이는 바빠서 바둑에 관심도 없고 재미도 없다."
"형님 알 바꾸시죠."
"바빠서 여가가 없다."
결국 흑백을 못 바꾸었다.
외갓집엘 가면 82세이신 큰 외삼촌과 76세이신 작은 외삼촌이 이제는 은퇴하시고 항상
바둑을 두신다.작은 외삼촌이 훨씬 늦게 바둑을 배우셨으나 더 잘 두신다.그래도 져주시면서
흑을 가지고 두신다.우애 깊으신 두 분 외삼촌께 배울 점이 많다.
"형님!그래도 알 바꿔 주세요!!!"
익지 않은 벼는 고개를 빳빳히 들고 꽉 찬 수레는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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