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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공평하다
내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주 멋있게 차려입은 중년 신사 한 분이 들어왔다.
커다란 다이어 반지를 하고 롤렉스 금장시계가 번쩍이는
걸로 보아 한 눈에 돈이 많다는 걸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최고 좋은 전축을 찾는다며 견적을 내보라고 한다.
정해진 오디오 시스템은 있습니까? 예산은 얼마를 책정하셨나요?
어떤 쟝르의 음악을 즐겨 들으시는지 등등을 물어보았더니 JBL 제일 좋은 것,
맥켄토시 제일 좋은 것, 나까미치 카세트 제일 좋은 것,
토렌스 턴 테이블 제일 좋은 것을 찾으셨다.
좋아하는 음악은 클래식. 모두 제일 좋은 것만으로,
예산에 상관치 말고.
그 당시에는 선택할 수 있는 품목이
몇 가지 없어서 그런 종류가 항상 최고였다.
(지금이야 어지러울 정도로 그런 종류가 많아서 선택하는데 고민이지만)
서류 봉투를 여러 개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러 가게에서 견적을 받아온 것도 알 수 있었다.
JBL 4350 스피커, 맥켄토시 2500 파워와 C-33 프리,
나까미치 드래곤 카셋트, 토렌스 126 턴 테이블,
DBX 이퀄라이즈 20/20, KOSS 헤드폰, TEAC RELL DECK,
T-20 승압트랜스, MC20MKⅡ 바늘,
원판 베토벤 전집 한 세트 등등 다 합하니 2900만원이 넘는다.
(그 금액이면 28평 아파트를 살 수 있었음)
싸게 견적을 넣은 게 적중했는지 계약이 성사되었다.
며칠 후 그 집에 설치가 끝나고 이제 최고 좋은 오디오를 들여놓았으니
좋은 음악 많이 들으시라고 하면서 일이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일년 정도 후에 A/S를 해달라고 가봤더니 아직 사용법도 잘 모르고 있었다.
원판 베토벤 전집은 부채로 사용되었고…
다시 처음부터 사용법을 잘 가리켜 드리고 왔다.
지금도 당신의 시스템이 제일 좋다는 자부심을 갖고 계신다.
그리고 몇 년 후 친구의 소개로 찾아 온 손님이 있었다.
30년 동안 음악을 좋아하면서 지냈는데 변변한 시스템이 없었다고 하며
1백2십만원 범위 내에서 추천해 달라고 한다.
이 연구소의 6V6 PP Amp와 pre, JBL L36 스피커,
테크닉스 1700 턴 테이블을 시연해 보니 대단히 좋다고 한다.
그리곤 그 집에 설치를 하러 갔다.
부인은 삼겹살에 소주까지 곁들여 저녁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삼십년 동안 모아 놓은 판의 대부분이 백판이고
비싼 라이센스판이 약 10%,
원판은 몇 장(큰 맘 먹고 산 것이라고 함)
합이 3,000장이 넘고 돈이 너무 없어서
새마을 방송할 때 쓰는 모노 Amp로 음악을 들었던 것이다.
고장이 나면 수리비나 새로 사는 것이나 별 반 차이가 없어서 새 것을 사서 듣고
고장난 것을 모아 놓은 게 다락방에 여러 대가 쌓인 것이다.
소박한 것이지만 오디오다운 오디오를 설치하고 음악을 들으니,
“어? 판에서는 속에 숨어있던 트라이앵글 소리가 살아나오네.
베이스 기타의 소리가 선명해졌네”하며
어린 아이 같이 눈물을 흘리며 좋아한다.
비틀즈 멤버의 누구 생일이 언제며,
부인과 어떻게 만났으며 아바 그룹이 어떻게 헤어졌으며
어디에서 공연했을 때가 제일 히트를 치고~~~
4시간 동안이나 강의를 들었다. 음악가들에 대해
그렇게 많이 알면서 부인의 생일이나 기억할 까 의심스러웠다.^^
그로부터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여 지금은 초하이앤드 기기를 듣고 있다.
전자는 재산이 너무 많아 돈관리하기에 대단히 바쁘시다.
그러니 고가품 오디오를 장만하고도 차분하게 음악을 들을 여유가 없어 보인다.
후자는 많은 재산은 없지만 시간이 많은
관계로 정말로 음악을 즐기며 감동하고
눈물까지 흘리니 이러한 부분에서는 조금 공평한 게 아닌가 한다.
우리 모두 좋은 음악 많이 듣고 감동합시다.
매사에 감사하면 젊어진다고 합니다.
부디 젊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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