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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할머니는 거지가 되었다.
그렇지만 자식들을 살펴야 한다는 일념으로 살았다.
어느 날 방앗간 집에 동냥을 했다.
그 방앗간 집 주인은 부인과 사별한 지 여러 해 되는 홀아비였다.
그 남자는 고향에 부모와 자식을 두고 혼자서 살고 있었다.
어찌어찌하다가 그 집에서 빨래며 밥이며 허드레 일을 하며 자식들까지 배불리 먹이는 행운을 얻었다.
행여 그 집에서 쫓겨날까 두려워 온갖 정성을 다 쏟았다.
그 일을 몇 해하는 사이에 그들 사이에 아이가 둘 생겼다.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 중 최고 행복한 몇 해가 금방 지나갔다.
어느 날 이웃에 새로운 현대식 방앗간이 들어서고 그 남자는 어쩔 수 없이 방앗간을 폐쇄하고
고향으로 간다고 했다. 남자가 자신을 버릴까봐 몹시 두려웠다.
또 다시 예전 생활이 시작되는 줄 알았으나 그 남자는 자기가 낳은 자식만 데려 간다면
그녀도 같이 데려가겠노라고 했다. 전남편과의 사이에 난 자식은 어느 정도 체면치레를
할 나이가 된지라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갓난아이 둘과 새 남편의 집에 와보니 겉으론 부유하고 너그럽고 화목한 집안 같았으나
보기와는 달리 그렇지가 않았다. 크게 넉넉하지도 않았고 자기들만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각자 내면의 벽이 두꺼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자신은 철저한 소외자였다.
일부종사를 하지 않았다고 무시하고, 자식을 버리고 온 여자라고 멸시하고
두 아이를 서자라고 업신여기고 누구하나 자기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온갖 굳은 일만 시켰다.
게다가 아랫동서들은 하대를 하고 어린 조카들조차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할머니는 끼니 잇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흐르고 아이들도 커가니 마음도 안정이 되고 자신의 꿈도 같이 키웠다.
어린 자식들만 건강하게 잘 우면 행복한 노후가 보장되리라 생각했다.
큰 아이는 그런대로 보통아이로 자랐으나 둘째는 병치레가 잦더니 자폐아가 되었다.
시간은 모든 것을 감싸는 지 이방인 같았던 할머니도 어느 새 새남편 집안의 식구가 되어 있었다.
모두가 어울릴 수 있었다. 가끔씩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자식들이 찾아오고,
온갖 시름 다 잊고 하루하루 살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팔순이 되었다.
그 사이에 세상이 너무 변했다. 그렇게 구박하고 무시하던 식구들도 제 살 길 찾아 모두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가버리고 시골에는 자신과 자폐증 아들만 남아 남은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자연 한가로운 시간이 많으니 돌일 킬 수 없는 과거가 다시 살아나고 지난 세월이 너무나 서러웠다.
어느 가을 날 도회지 나갔던 식구가 시제 지내러 온 날 자신을 그렇게 무시하던 아랫동서와 한 방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토록 한 많았던 생애를 밤새워 서럽게 서럽게 털어놓았다.
그날 아랫동서는 울면서 진심으로 사과했고 처음으로 형님이라 불렀다고 한다. 45년만에…
그 한마디에 김할머니의 한도 봄날 눈 녹듯 했다고 한다.
형님이라 불러주어 너무 고맙다고 몇 년 후 그 아랫동서의 두 손을 꼭 잡고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김할머니께서 운명하셨을 때 행복했는지 한만 많이 안고 가셨는지는 내가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그리 나쁜 업을 쌓고 가시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인과응보가 있을진대 저 세상에서는 행복하게 사시리라 믿는다.
오늘 날 우리는 너무나 많은 매체를 통해 온갖 희로애락을 접한다.
김할머니를 무시했던 아랫동서가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는 심정으로 울면서 나에게 털어놓을 때
영화와 소설도 아니고 불과 몇 십 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사회가 너무 급변해서 김할머니 사셨던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천국에 사는 게 아닌가 한다.
그런데 내 삶은 왠지 더 어렵고 답답하고 더 살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아아~~ 상대적인 빈곤이니 뭐니 하고 이유를 대보지만 그런 것만은 아닌 것같다.
처절한 가난도 문제가 많지만 물질적 풍요와 행복은 반비례하는 건 아닌지…
어려운 문제다. 더 많은 시간을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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