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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할머니를 만난 것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였다.
그 분과 친하게 지내고 두터운 정을 나누며 지내 왔었다.
김할머니의 생애에 대한 얘기를 듣고 나서 근세에도 이런 삶을 살아온 분도 있구나하고 아주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듣고 본 바를 가감없이 적어 본다.
김할머니는 1920년생으로 생일을 알지 못한다. 양반이라는 허울만 쓰고 농사 지을 땅 한 뼘 없는 아주 어려운
집안의 맏딸로 태어났다. 대단히 엄하고 무서운 그녀의 할머니는 어머니를 매일같이 쥐 잡 듯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남의 집 농사일, 부엌일, 애기 보기 등 온갖 굳은 일을 다 시켰다.
그 노동의 대가가 집안 식구 한 끼 식사도 되지 못했다. 곡기라곤 찾기 힘든 풀잎, 채소 부스레기가 전부였다.
예닐곱 살 철이 들 무렵 이른 봄 어느 날 그녀의 어머니가 만삭이 된 그 날은 일을 하러 가지 않고 방에 누워 있었다.
호랑이 같은 할머니가 마당에 서성이며 간혹 헛기침만 하였고 한참을 지나 어머니의 산고가 시작되었고
고통을 감추는 신음소리가 들리고 드디어 갓난 어이의 울음소리가 났다. 이윽고 밖에서 서성이던
할머니가 “ 뭣 이더냐 ” 하고 묻고 어머니는 “ 딸이예요”
할머니께서 “ 없애라 ” “ 예 ” 다음은 “***……” 정도의 소리로 일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는 아주아주 오랫동안 나직하게 슬픈 울음을 삼키는 어머니의 애끓는 소리가 흘러내렸다.
김할머니는 아주 어렸지만 그 일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었다.
너무나 가난하여 입 하나라도 들어야 하고 아기를 가진 산모가 되면 노동력이 감소된다 하여 필요 없다고
여겼던 갓난 여자아이를 시어머니 강압에 의하여 자기 손으로 없앴다고 한다.
첫 딸은 살림밑천이라고 다행히 김할머니는 죽임을 당하지 않았지만 서너명이나 되는 동생들에게
그런 무모한 일이 가해졌다.
그 후 아홉 살 되던 해 비슷한 처지의 허울 좋은 양반 집안에 민며느리로 들어갔고 친정일은 잊혀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가해지는 시어머니의 매질과 구박을 견뎌야 했다. 끼니 때만 되면 무슨 핑계를 대든지
생트집을 잡아 집 밖으로 쫓아냈다.
숱한 밤을 남의 집 처마 밑, 헛간, 콩밭 속 등에서 새웠다. 익지도 않은 보리, 생콩, 고구마 또는 메뚜기,
개구리, 심지어 쥐까지 잡아먹으며 허기를 채웠다.
춥지 않은 여름에는 알도 맺히지 않은 생콩을 깍지 채 먹다가 지쳐서 잠이 들고 새벽이 되면
온몸에 이슬에 젖어 뼈 속까지 한기가 스며들고 늑대며 살쾡이에게 물려서 끌려간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한 세월도 지나고 무서운 시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열 여섯 살 때 큰 아들을 낳고 밑으로 셋은 사산을
하고 둘째 아들을 낳았다.
남편은 625동란 때 인민군에게 끌려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 후 난리도 끝나고 아들들을 데리고 동냥을 하며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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