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란츠
본격적인 민간용 오디오의 고전인 이 회사는 음악사로 치면 바흐에 해당한다고
할까. 그러나 이 회사도 군수품으로 여러 가지 부품들을 납품하였으며, W.E.의 영향을 받았는지 모델명 표시에 숫자나
알파벳만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숫자로 모델명을 표시하는 것은, 사람 이름이나 지명 기타 고유명사를 사용하는 것에
비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아 손쉽고, 또 전문적인 느낌도 주기 때문에 이후로도 많은 오디오 제품명이 이들의 전례를
좇고 있다.
설립자의 이름을 회사명으로 표시한 예는 마란츠 이외에도
마크 레빈슨을 위시하여 매킨토시, 젠센, 로저스, 굿맨스 기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설립자의 이름을 회사명으로
표시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걸만한 실력과 각오가 필요할 것이다.
인명을 회사명으로 삼는 회사는 모델명을 숫자로 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탄노이처럼 인명을 사용한 다음 지명
명소 등 고유명사를 사용하여 모델 구분을 표시하는 경우도 많다(예컨데 버킹엄은 왕궁이지만, 민주주의의 본산지이므로
국회를 상징하는 웨스터민스터 모델이 훨씬 위이다. 이 정도로 이 사람들은 세심하다) 그외에도 관념이나 숫자를 사용하기도
한다. 젠센, 콘라드 존슨, 제프 롤랜드 등은 회사명으로는 인명을, 모델명에는 관념이나 숫자를 사용했다.
Ar, 오디오 리서치 등의 회사명은 관념으로, 모델명은 숫자와 알파벳으로 표시하며, 일렉트릭 보이스는 회사명을 관념을,
모델명은 사람 이름 숫자 관념 등으로 표시했다. 모델명에 인명 지명 등 고유명사를 쓰면 모델의 식별이 용이해지는 이점이
있다.
역사가 짧은 회사들은 관념을 사용해서 회사명을 작명하는
케이스가 다수를 차지하는 것같다. 인명으로 표시한 기존회사가 많은데다 이들과 이름으로 정명 승부를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지신들의 포부나 제품의 장점을 함축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작명하기가 가장 까다로운 케이스라 하겠다. 제품의 품질은 나무랄 데 없는데 회사명이나 특히 모델명이 시원찮아서 판매에
영향을 받는 예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어쨌든 이 같은 작명방식은 우리가 특별히 눈여겨 봐두어야 할 가지가 있다.
왜냐하면 언젠가의 수출에 대비한 우리 제품의 작명은 거의 이 방식대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유명사
기타 단어 중에 국제적 인지도가 높은 것이 극소수인데다 우리말을 그대로 영문표기하고 싶어도 ㅑ ㅕ ㅛ ㅠ ㅚ ㅟ 등
어중간한 것이 많이 써놓고 보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 또 ‘썅’ 같으면 흔히 ssang으로 표기하는 수가 많은데 그건
우리식 표기일뿐 외국사람들에게는 s자 뿐만이 아니라 모든 자음은 열개를 연달아 써도 발음은 한 개만 되기 때문에 그냥
‘상’이 되는 등 난관이 많다.
결국 영어를 그대로 써서 우리와 전혀 감성이 다른 그들에게 어필되어야 한다는 점에 영어 작명의 중요성과 어려움이 함께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 Musical Fidelity
가격대비 성능이 뛰어난 제품의 대명사이다. 하이프라이스 피델리티만 치닫고 있는 세계 오디오업계에서 좋은 귀감이 되고
있는 회사이다. 평범한 것 같지만 오디오의 정곡을 찌른 작명으로 설계와 모델 작명이 모두 뛰어난 좋은 예이다. 구미에서
이 모델이 항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음질 못 지 않게 그 작명의 공이 크다고 본다. 좀 긴 듯하지만 매우
잘 지은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 Counterpoint
대위법, 이 회사는 등장 초기부터 Tr과 진공관의 장점을 취한, 당시 설계와 독특한 음색으로 혜성처럼 나타나서 한동안
세상을 풍미한 바 있다. 대위법이라는 기법이 없었더라면 음악은 정말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대위법과 같이 음악(오디오)에
오묘한 변화를 주겠다는 것이 작명의 동기일 것이다. 회사가 존속하고 있는지 어쩐지 모를 정도로 요즈음은 조용하지만
어쨌든 그것이 작명 탓은 아니라고 본다.
●Meridian
물론 이는 자오선, 그리니치 천문대를 의미하지만, 이 한마디 말에는 영국,오디오의 이상인 flat, 0라는 의미가
다 함축되어 있다. 제품의 명과 실이 일치하는 좋은 예이다.
●Linn
Lynn이라면 사람 이름이지만, Linn은 뭔지 모르겠다. 모를 것은 이것만이 아니고 Ittok, Asak도 있다.
Nirvana(열반, 해탈)는 산스크리트어, Valhalla는 북구의 오딘 신을 모시는 사당으로 지식과 기술의 전당을
의미한다고 하니, 턴테이블 하나에 어려운 말투성이다. 이외에도 어려운 말은 계속된다. 아니소배릭 스피커의 Isobarik은
isobaric즉 ‘등압’(等壓)을 뜻한다. 스피커의 각 유닛이 같은 공기압을 만든다면 이상적일 것이다. 전대역에
걸친 훌륭한 균형과 이음 새 없는 무서운 저음도 그런 원리에서 나오나 보다.
어려운 말을 써도 이 정도의 이유가 있다면 할 말이 없다. 어쨌든, 갑자기 알기 쉬운 말로 바꾸기도 뭣해서 계속 어렵게
나오고 있지만, 모델의 작명에 들이는 정성만은 알아줘야 한다.
가격 대비 성능도 좋아서 꾸준히 다 잘 나가고 있는 것 같다.
●Goldmund
스위스판 마크 레빈슨이라 할 수 있을 이 회사 제품은 매우 고가이지만 일본에서 인기가 높다. 회사명의 출처는 뜻밖에도
H.헤세의 소설 ‘Narxiss und Goldmund’중 ‘골트문트여, 너로 인해 기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도다’
이다. 모델명 Mimesis는 모방을 뜻하는데, 이 독창적인 제품들이 모방품 이라면 진품은 언제 나올건지.
●Quicksilver
KT88을 쓴 앰프로 혜성처럼 나타났었지만 요즈음은 통 광고가 없는 걸 보면 장사가 잘 안되는 모양인가. ‘수은’.
‘극히 유동적인’이라는 뜻이지만 그게 어쨌다는 건지 종잡을 수 없다. queen 빼고는, q 로 시작되는 말치고 변변한
것 없다는 얘기도 있지만, 사실은 queen마저도 별수 없다. King한테 항상 눌리니까(카드놀이에서).
●Audio Alchemy
이 회사도 저가 양질의 제품으로 데뷔시 부터 화제를 모았으나 요즈음은 활동이 뜸하다. 연금술(練金術)로 금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 했듯이 오디오로 원음을 연금하는 것도 애당초 될 수 없는 일이니까.
●Sonneteer
저가 우량 제품으로 한창 구미지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신진회사이지만, 소네트를 읊조리듯 울리면 그게 좋은 건지 어쩐지
모르겠다. 꽤 장고 끝에 지은 듯한데 오디오에 까지 셰익스피어를 내세우다니 너무 국수주의적 작명이다. 엉터리 시인이라는
뜻도 되는 모양이다
●Vienna Acoustic
말러 스피커로 일약 유명해진 오스트리아 회사다. 음악의 나라이지만 오디오 불모지로서 헤드폰의 AKG, 턴테이블의 프로젝트가
있는 정도다. 생음악처럼 오디오로도 빈의 냄새가 나도록 해주겠다는 얘기 같다. 그러나 말러 스피커로는 말러를 듣고
모차르트를 들으려면 또 모차르트를 사라는 말인가. 말러가 모차르트 보다 월등하게 비싼 이유는 1달러짜리 지폐와 100달러짜리
지폐의 초상화의 관계와도 같은 것인가? 요즈음 유행하는, 유명작곡가나 장인들을 모델로 하는 작명의 한 예이다. 우리는
흉내내지 않는 것이 좋겠다.
●Sonus Faber
소리의 공방(工房). 악기를 만들어 낸다면 몰라도 오디오 메이커로서는 그렇게 좋은 이미지를 못 느끼겠다. 목 공예
값을 대폭 얹어서 엄청나게 비싸게 받는 느낌이다. 근자에는 과르네리의 상급기로 아마티를 선보여 애호가들을 들뜨게 하고
있다고 한다. 첼로에서도 같은 모델명의 스피커를 내놓아 서로 박치기 하고 있고, 우리도 가세하고(가라드에다 붙인 받침대)
있는 걸 보면 아마티가 과연 좋긴 좋은 건가 보다.
●Luxman
이 유서 깊은 이름은 일본식 영어가 판치던 때에 작명 된 것이라 족보에도 없는 영어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작명이지만
역사가 오래되고 제품이 좋아서 알아 주는 것 같다. 서양사람 이름일 리도 없고, 애매모호하며 조잡해서 작명으로서는
낙제급이다. 그래서 같은 조건이라면 애큐페이스를 사겠다.
●코에츠
사실 코에츠라고 발음해서는 일본에 가서도 이 바늘을 못 산다. 코오에츠라고 말해야 알아듣는다. 우리의 외래어 표기법에
문제가 있다. 현지 발음대로 적어야지. 레이저 빔도 아닌데 왜 ‘光悅’ 이라고 명명했는지… 혹시 가문의 이름인지.
그러나, 스가노가 감기가 들면 세계의 마니아들은 몸 져 눕는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니. 작명론이 끼어 들 틈이 없다.
●Totem
Totem Forest라는 신예 맹장급 스피커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무속(巫俗)으로 사람을 홀리겠다는 뜻은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묘한 작명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오디오 시스템 가운데 우뚝 서 있으면서 사람들이 우상처럼
떠받치는 것이 스피커이다. 수수께끼를 던지는 것같이 이색적이기는 하나 정석에서는 벗어났다.
이렇듯 남의 나라 얘기를 많이 해왔지만 그러면 우리는
과연 어떤가? 오늘 얘기의 핵심은 지금부터이다. 우리의 실상을 보면, 비단 오디오에 국한된 것은 아니겠지만, 품질은
놀랍게 향상되었는데 순동이, 복동이 정도의 작명이 많다. 이제 그 실례를 하나씩 살펴보겠다.
●엠퍼러
정확히 국산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좋은 음질과 우리나라 메이커의 이름으로서는 엄청난 가격표를 붙인 것으로
화제를 모았다가 이내 단종이 되고 만 앰프와 스피커이다.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 황제가 되어버렸다.
남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손수 풍악을 울리는 황제가
오래 지탱이 될 수가 없고, 듣는 사람도 황송해서 재미가 없을 것이다. 단연 최고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일까. 그러나
그것은 듣는 사람이 판정할 문제다. 너무도 유명한 피아노협주곡 제5번…?, 마르고 닳도록 들었으며, 그래서 라디오로
들어도 되는 곡이다. 스피커를 쳐다보면 과연 당태종 초상화 같은 면모가 없는 바도 아니지만, 아파트나 자동차에도 못
붙일 무지막지하며 진부한 이름으로서 적어도 수출은 바라보기 어려운 작명이다. 모처럼 좋은 제품이 이내 단종되고 만
것은 그 작명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마에스트로
‘하이파이저널’ 베스트 10에 오를 만큼 훌륭한 음질이나, 이름이 100여 만원짜리로는 너무 과하고, 또 진부하다.
너무 큰 모자를 씌웠다. 상급기가 나오면 뭐라고 명명할지 궁금하다. 또 여기서 얘기할 성질은 아니지만. 첫 제품이
나온 후 곧바로 단종 시키고, 걔량 했다고 해서 두 달여 만에 값을 대폭 인상한다고 하니 사정이 어떻든 상식 밖의
일이다. 전시품을 사 들고 올 정도로 소리는 마음에 들었지만 그와 같은 영업방식 하며 번지르르한 외관 모델명 등등이
마음에 안 들어 재미가 반감되는 기분이다. 스티커로 모델명을 가릴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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