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오디오애호가의 다섯가지 조건 3   0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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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애호가의 다섯가지 조건 3

월간오디오 91년 1,2, 3월호에 연재된 건데
2월호가 없어서 3편으로 바로 넘어갑니다.

4. 진공관앰프를 사랑할 것

트랜지스터 앰프에 많은 장점이 있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 지금 진공관 운운한다니 공연한 회고취미라고 젊은이들이 빈정댈지 모르나, 오디오 애호가로서 진공관의 좋은 점을 무시할 사람은 없으리라.
그 좋은 예가 ‘Marantz 7’이다. 아다시피 마란츠사도 ‘마란츠7T’를 냈다. 그러나 지금까지 환상의 명기’라고 불려지며 매우 성가 높은 것은 진공관쪽이며 어느 누구도 7T를 절찬하지는 않는다.

나는 ‘7T’를 퍽 오랫동안 써왔다. 그후 짐란의 그랙픽 컨트롤러 SG520으로 바꾸면서 7T를 추방했다. 메인앰프는 처음에 8B, 후에 매켄토시 MC275로 바꾸었다. 개인적인 의견을 말한다면, 마란츠 7T보다 SG520이 훨씬 낫다. 그래도 MC275를 메인앰프로 써서 우리집 스피커를 울려본 바로는 진공관의 매킨토시 C22를 SG520은 능가하지 못한다.

분해능력이나 음의 세부에 걸친 선명도에서는 분명 520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음이 무기물처럼 들리며 배음이 인공적이다. 따라서 배음의 아름다움이나 여운이라는 것이 SG520이라기 보다는 트랜지스터 앰프 자체에는 없다. 배음의 아름다움을 제외하고 오디오에서 음의 아름다움을 논하려는 생각은 아예없는 나이니까 트랜지스터 앰프는 결국 쓸모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셈이다. 여기에는 물론 우리 집 스피커 인클로져가 트랜지스터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물론 진공관에도 약점은 있다. 수명이 짧은 점은 그 중에서도 으뜸일 것이다. 게다가 더 골치 아픈 일은 진공관을 한번 바꾸면 반드시 음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출력관일 경우 특히 그렇다.

진공관 바꾸기에 내가 얼마나 고심해 왔던가? 지금 듣고 있는 MC275도 ‘가지’라고 우리가 부르는 그 진공관 KT88을 신품의 KT88을 바꿀 때마다 다시는 예전의 같은 음으로 울려주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신품의 KT88을 바꿀 때마다 음은 변하고 있었다.
따라서 만족한 음을 찾기 위해 또는 새로운 매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열 여섯개나 차례로 바꾼 일이 있었다. 히어링 테스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한 쌍으로 바꾸어 꽂고는 여러장의 레코드를 다시 들어보게 된다. 대단한 시간낭비다.
음의 아름다움은 이러한 수고와 시간을 나로부터 빼앗아 간다. 또 금전의 낭비도 요구된다.
돌이켜보면 엄청난 낭비이며 아마 트랜지스터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진공관의 훌륭함을 사랑해본 일이 없는 사람과 오디오가 무엇인지를 결코 나는 말하고 싶지 않다.

5. 돈이 없다는 안타까움을 뼈저리게 느낄 것

옛날과 달라 지금 같으면 돈만 있다면 최고급 제품을 얼마든지 갖출 수가 있다. 돈을 아끼지 않고 그러한 일류품을 장만해서 응접실에 장식해놓고 황홀경에 젖어있는 사나이를 나는 알고 있다, 하나 그 호사스런 응접실에서 울리고 있는 음의 허무함이여. 그의 레코드 콜렉션의 빈약함이여. 매수는 천 매 가까이 갖추고 있지만 이렇다 할 명반이 없다. 그는 스스로 판별할 수가 없다. 레코드 평에서 ‘명연주’라고 하면 무작정 사놓을 뿐이다. 하이든의 4중주 전 82곡을 그는 갖고 있다.

내가 <수난 Passion>을 들려달라고 하니까 ‘<열정 Passion> 베토벤 것 말인가? 하이든에게 그런 곡이 있었나하고 반문한다. 그런 사람이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관계가 제49번의 이 교향곡에서 해명될지도 모른다는 따위는 꿈에도 생각 못한다.  오늘날과 같은 정보 과다의 시대에는 정보를 수집한다기 보다는 그것들을 버리는 쪽에 교양이란 것이 있다. 적어도 레코드 음악의 감상에서 평범한 곡을 알기 보다는 알지 못하는 사람 쪽이 교양인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한다. 어떤 곡을 콜렉션에 지니고 있는가라는 문제는 어떤 곡을 갖고 있지 않는가와 같은 의의가 있다. 하물며 연주에 있어서는 그가 울리고 있는 재생장치의 음색과 같은 의미나 관련을 갖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늘 하는 말이지만 울리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의 결집된 음이다. 돈이 없기 때문에 보다 우수한 스피커나 앰프를 구입할 수 없는 서글픔이 여기서 생긴다. ‘돈만 있다면…’하고 아무 생각해도 소용이 없다. 당신이 지금 울리고 있는 음의 빈약함은 당연히 지금 생활의 대답에 지나지 않는다. 50세가 지난 지금 우리집에서 울리고 있는 음에서 어떤 불만을 찾아냈을 때, 50년의 생애를 걸어 나는 겨우 이 정도의 음 밖에 내것으로 만들지 못했던가 하고 하늘을 우러러 울먹이는 것이다. 이 쓸쓸함은 필설로도 다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아무리 발돋움한들 어쩌는 수가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달래기 위해 레코드를 건다. 정성스레 레코드를 닦고 카트리지의 먼지를 턴다. 깊은 밤의 이러한 내 모습은 아내도 모른다. 그러나 틀림없이 우리 집에서 지금 울리고 있는 것은 이러한 내인생의 애환을 담은 음이다.

하이든의 49번 f단조 교향곡을 아직 못들어 본 사람은 꼭 한번 들어보기 바란다. 극도의 호사스러운 아름다움 속에서야 말로 슬픔이 있다는 것을 이 곡에서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가난하다. 그러나 그래서 슬프다면 그건 건방진 생각이라고 스스로에게 타일렀다. 가난은 가난하다는 사실에 불과하다. 슬퍼할 까닭이 없다. 이렇게 <수난>은 가르켜 주었다. 그 의미에서 이것은 <모차르트의 목소리>로 내게는 들렸다.

나는 하이든의 전기를 살펴보았다. 하이든은 수레바퀴 만드는 목공의 아들이며 의당 가난해서 한번도 정식으로 작곡법을 배운 일도 없고 빵을 위해 일을 했으며 밤이면 거리의 유랑 세레나데 악단에 참가하거나 또는 머슴살이로 다락방에 살면서 독학으로 공부했음을 알았다.  다시 한번 <수난>의 멜로디를 떠올리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하이든이 맛 본 가난을 이 무렵 나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가 가리켜 준 호사스러운 아름다움 속에 깃든 슬픔은 과거의 그의 가난과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설명이 좀 부족한 듯하지만 음이란 역시 그 비슷한 것이 아니겠는가? 가난을 모르는 사람에게, 가난의 안타까움을 맛보지 못한 사람에게 어떻게 애호가가 애써서 내는 아름다움 따위를 알 수 있겠는가? 아름다운 음색을 알아차릴 수 있겠는가?  



 


운영자 04-03-07 18:50
뎃글 삭제  
  저의 경우는 5번 항목에 공감을 합니다. 클래식에 대해선 아는 바도 없지만 처음으로 소위 하이엔드라고 말하는 기기를 들여놓고 내가 너무 오버하고 사는 건 아닌가하고 반문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만성이 되었지만...^^

자수성가한 사업가인 동호회원 집에 갔을 때, 직원들이 집에 오면 오디오가 많이 불편하다고 그러더군요. 호사가 취미로만 인식되는 오디오라...
그도 처음에 오디오를 들여놓고 \'내가 이래 잘 살아도 되는가?\'하고 많이 고민했다고 합니다.

누구에게는 호사가의 취미고 누구에게는 꿈이되는 이 오디오가 괴상한 놈 임에는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