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오디오의 5적(이승 님)   04-07-05
글쓴이 운영자   2,443 hit
 
스위치만 누르면, 데이브 브루벡 사중주단이 안방까지 출장을 나와서 테이크 파이브를 연주해 준다. 오프라 하노이가 요염한 자태로 첼로를 켜 주고, 죽은 존 레논 귀신이 이메진을 불러준다. 그 뿐인가? 말러가 수백명의 악사들을 데려와서 연주를 해준다. 아쉬케나지가 쇼팽을 연주하는 엄숙한 순간에 코딱지를 후비건 1812년의 대포 소리에 맞춰서 방구를 뀌어대도 아무도 주의를 주는 사람이 없다. 비싼 입장료도 안내고 월말에 전기세 몇천원 물어 주면 된다.

이건 열락이다! 네로도 진시황도 심지어는 백제 의자왕도 이런 재미를 맛보지 못하고 죽은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사람 사는게 다 그렇듯이 항상 좋을 수 만은 없는 것이다. 이런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오디오 쟁이들은 오늘도 만만찮은 적들과 싸워야한다. 그리고 그 적들은 너무나 가까이에 있다.

오디오의 동지 K가, 스피커의 그릴을 벗기고 들으면 해상력이 증가하더라는 얘길하길래 집에 돌아와서 조심스럽게 그릴을 들어내고 양 스피커 사이의 3각형의 꼭지점이 되는 곳에 방석을 놓고 앉았다.
흠.. 좋겠지..
그런데, 어라? 픽! 픽!... 어디선가 바람 새는 소리가? 의심쩍은 눈길로 스피커를 살펴 보면, 콘지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그리고 더스트 캡에 꽃혀있는 기다란 젓가락! 커헉!! 이럴 수가?
다섯 살 난 아들놈의 짓이다! 오디오 첫 번째 적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아들놈을 붙잡아 앉혀 놓고 머리를 쥐어 박아봤자 소용이 없다. 오디오에 아빠의 사랑을 빼앗겼다고 앙심을 품은 아들놈은 출근한 새에 2차 테러를 자행한다. 뿌직!뻑! 앰프의 KT88 두 알이 희생되었다.
...퇴근 후에 이를 발견하고 눈이 뒤집혀 아들의 머리통을 후려 갈겨 주었다.

그 순간 오디오의 두번째 적이 홀연히 나타난다.
“아니, 애를 왜 때려? 저놈의 오디오 땜에 집안이 고물상이 된 것도 참아왔는데 왜 애를 잡아?
차라리 나를 쳐라, 죽여라 죽여. 살어라 살어 오디오랑 살어라.”- 하고는 보따리 싸서 애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린다.
바로 오디오 두번째이며 최대의 적인 마누라인 것이다.
담배 한대 피우고 화가 가라 앉으니까,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래, 오디오보다는 처자식이 중요하지...
그래서 저녁 때 술 한병 사가지고 처가댁에 간다.
“장인 어른 한바탕 했습니다. 허허허.. 장모님, 요즘 신경통은 어떠세요? 헛헛..”
그리고 다시는 오디오를 위해 처자식을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집으로 온다.
집으로 오는 길에 아내가 화해의 선물로 콤비 오븐렌지를 사달라고 조른다.
돈이 어딨어? 그러자, 집안 불화의 원인이된 오디오들을 팔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소리가 그 소리니까 조그만 미니콤포로 바꾸면 당신은 음악 계속 들을 수 있어서 좋고 나는 콤비오븐렌지가 생겨서 당신과 아이를 위해 맛있는 케익을 만들 수 있어서 좋으니 저절로 가정엔 평화가 온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 오디오를 켜 놓고 담배를 피워 문다.
내가 이걸 들여 놓고 아직 한 번도 맘 껏 볼륨도 못 올리고 제 실력도 뽑아 내지 못 했는데 말이야..
공연히 울적한 기분이 되어 1812년 서곡을 걸고는 볼륨을 2시 방향까지 올려 보았다

쿵쿵!! 대포 소리가 영혼까지도 흔들어 준다.
아 좋다..
그 때
띵동띵똥...
“아랫집인데요, 애가 고3입니다. 도대체 아파트에서 밤낮 대포를 쏴대니 이거 우리 애 서울 대학 떨어지면 당신이 책임 질 거요? “
오디오 제 3의 적이 나타난 것이다. 철마다 사과 상자 한 박스씩 쳐 엥기며 눈치를 봐왔건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뽀르르 달려와 요비링을 누른다. 아, 열난다. 또 담배만 뻑뻑 피워대고 있는데, 마누라가 또 와서 도끼눈을 뜨고 “그것 봐, 난 몰라, 챙피해서 이젠 슈퍼에도 못가겠어..”하며 깽깽거린다.
디-스트레스가 엄청나게 쌓인다.

그날 밤을 꼬박 세워 울분을 삭히고 있다가 아침에 벌떡 일어선다.
알았어, 죄 팔아 버릴 거라구.
오디오들을 몽땅 차에 싣고 있는데 관리인 아저씨가 기웃거리며, 이사가슈?하고 묻는다. 약이 올라서 공연한 차를 발로 찼더니 발가락만 무지 아프다. 오디오들을 몽땅 싣고 샵에 가지고 갔다. 샵 주인장이 이리저리 두드려 보고 뚜껑을 열어 보고 그러더니,
“이거 다 썩었네.. 100원 줄테니 놓고 가슈. “ 그런다.
“아니, 이거 당신이 팔 때는 300원에 팔았잖아? “
“아 그럼 딴 데 가보슈.”

어제는 동지였지만 오늘은 적이되는 오디오 제4의 적과 만난 것이다.
울면서 샵주인으로부터 100원을 받아서 떨어지지 않는 발을 들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 용산 전자랜드로 향한다. 본관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려 매직쉐프 대리점에 가서 90원 주고 콤비오븐렌지를 산다. 손에 남은 10원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다 인켈 대리점에 들어가 미니콤포를 만지작 거린다.
“안 살 거면 만지지 마세여.” 젊은 종업원이 딱따거린다.
“뭐야? 내가 이까짓 미니콤포나 듣는 사람인줄 알어? KT88에 제비알 4344로 듣던 사람이야. 이거 왜 이래?”
“아, 그러십니까?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얘가 어제 들어와서 암 것도 모르는 놈이에요.”
주인이 젊은 종업원의 대가리를 딱 때리며 “가서 걸레질이나 해!”하고는
“아, 이거 고르셨습니까? 이거 요즘 잘 나가는 거에요. 하이엔드 듣다가 소리에 도가 튼 분들이 서브로 쓸려고 많이들 들여 놓는 물건이에요. 원래 11원인데 이렇게 또 오디오 애호가 분을 만나고 그랬으니 10원에 드리죠. 저도 집에서 제비알 4344 씁니다. 맘 고생이 많으시죠..” 운운..
그래서 10원 주고 미니콤포를 사들고 집에 온다.

...........시간 경과...............
...마누라가 콧노래를 부르며 콤비오븐렌지에서 케익을 굽고 있다.
아들은 레고 성시리즈를 조립하고 있다. 미니콤포에서는 1812년의 대포를 퐁퐁!하고 쏴댄다.
이제 가정의 평화와 심리적 안정이 찾아 온 것인가?
책상에 앉아서 종이를 꺼내든다.
이놈의 아파트를 팔아서...
종이에 설계도를 그린다. -지하실은 이렇게 해서 30평으로 하고 천정 높이는 3미터 정도, 아냐 4미터로.. 방음은 타공 스폰지로 하고 음향판을 이쪽하고 이쪽에... 그리고 스피커는 여기다 놓고… 됐어..
이제 아파트만 팔면 되는 거야. 그리고 일산 쪽에 땅을 사서..
따르릉~~
공상은 전화벨 소리에 끊어졌다.
“난데 말야~ “
오디오의 동료 K였다.
“아, 845pp를 새로 들여 놨다고 얘기 했던가? 이거 죽여 아주 죽여 이젠 완전히 우리집 ATC를 쥐고 흔들어. 우리집 사운드가 드디어 득음을 한 것이야. 들리지 이 소리? 어때 스테이징 죽이지? 전화 끊고 얼른 건너와 이 소리에 자네도 한번 취해보게 쿠핫핫…”
딸깍.
….이 자슥이…
다섯번 째 적은 바로 이 인간이었다.

 


샤프심 04-11-08 13:32
뎃글 삭제  
흑흑~~~  바로 그거예요.....
앰프의 파워를 마구꺼버리는 마누라
최고로 양보한다는게 \"나 연속극 보게 당신 오디오 헤드폰으로 들어\"

\"애들 공부하는거 안보여\"

젠장~  그 비싼 시스템 으로  겨우 헤드폰 돌리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