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3 월 하순부터 4 월 중순까지 미국과 독일, 덴마크 몇몇 오디오 관련 회사들의 초청을 받아 해당 업체를 방문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평소에 사용해 본 경험이 있거나 관심이 있던 브랜드이었기 때문에 그 반가움이 적지 않았는데 특히 세계 톱 클래스의 스피커 전문이라고 할 수 있는 다인오디오 사를 방문한 것은 그들의 개발 철학과 명성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뜻깊은 기회였다.
독특한 문화를 바탕으로 한 유럽의 저력
다소 획일적인 사고일지는 모르겠지만, 세계 스피커 시장은 일명 미주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북미 라인과 드라이브 메뉴팩처링을 근간으로 하는 유럽 지역의 구미 라인업이 양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두 진영이 지향해 온 접근방식은 하나의 완성된 시스템으로서의 스피커에 관심을 두고 있느냐, 아니면 드라이브의 개념으로서의 스피커의 역할에 더욱 치중되어 있느냐에 따라 구분되기도 하는데, 이는 그만큼 해당지역에 따른 독특성이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유럽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스피커 분야의 영역은 북미 지역과는 조금 상이하다. 즉 그들은 주로 스피커 유닛의 개발과 제조, OEM 방식의 수급 라인을 통한 제품의 공급과 같은 부분에 강세를 보여왔는데, 이미 그 브랜드만으로도 명성이 자자한 다인오디오 (Dynaudio), 포칼 (Focal), 스캔스피크 (Skanspeak), 비파 (Vifa), 시어스 (Seas), 오디오 테크놀러지 (Audio Technology) 와 같은 제조회사들이 그 대표적인 일등공신의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유럽을 가점으로 하는 스피커 진영이 유독 유닛 자체의 제조 분야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흥미로운데, 이는 유럽인의 생활에 배어있는 가족과 가문을 중시하는 문화적인 성향과도 무관하지는 않을 듯싶다. 사실 초창기 구미를 중심으로 진행되어온 스피커 드라이버 제조분야는 주로 가내수공업과 같은 소규모적인 형태로 발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긴 세월동안 축적된 기술은 혈연관계에 입각한 매물림을 통해 전수되어 왔다. 예를 들어 스캔스픽 사의 경우 창업주 홋타레르파브리크 (Hojttalerfabrik) 의 가족이 지금도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오디오 테크놀러지 (Audio Technology) 를 창업한 에빈트 스칸닝 역시 자신의 아들인 페르와 함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결국, 이런 체제는 현재의 세계 스피커 유닛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유로 (Euro) 브랜드 파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단순히 유닛을 제조해 판매해온 유럽 스피커 회사들이 수십 년 동안 축적한 자사의 유닛 개발 기술을 필두로 시스템 스피커 시장에 직접 참여하는 새로운 경영 체제로 전환하고 있는 사례가 종종 보이는데, 이 분야의 터주대감인 보수적인 북미지역의 텃세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성공적인 결과를 얻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포칼 사의 경우 자회사인 JM 랩을 통해 전 세계 스피커 매니아의 드림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 그랜드 유토피아 (Grand Utopia) 와 같은 대작을 선보인 바도 있고, 현재까지도 유닛과 시스템을 함께 제조, 판매하는 회사로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번에 방문한 다인오디오 역시 유닛의 제조와 판매에 주력했던 경향을 탈피하고, 최근에 시스템 스피커 제조 영역에 합류함으로써 전격적인 변신을 시도했는데, 워낙이 쟁쟁한 브랜드 이미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과 적극적인 판매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한다 할지라도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시실에 배치된 다인오디오의 생산품과 프로토타입들
전시실에 배치된 다인오디오의 생산품과 프로토타입들
크로스오버 네트워크의 제작실
각종 크로스오버 네트워크 파트
기대 이상의 첫인상을 준 다인오디오
다인오디오 사의 방문은 함부르크에 있는 대외 수출관리 부서를 둘러본 후 덴마크 스캔더보르크의 본사와 공장을 방문하는 일정으로 계획되었는데, 이번 여정은 현재 동사의 카오디오 전용 스피커 제품을 국내에 공급하고 있는 ㈜ JB 전자의 손정배 사장과 함께 했다.
함부르크에 도착하자 마중 나온 다인오디오사의 수출 담당 매니저인 로버트 하르게만씨를 만날 수 있었는데, 2000 년 CES 쇼에 이어 개인적으로 세 번째로 만나는 필자를 반갑게 맞이 해주었다. 함부르크에서의 휴식을 마치고 방문한 대외수출관리 부서는 사실 소규모 부서 정도로 예상했기에 그리 커다란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실제 방문을 예상했을 때는 짐작을 깨는 그 규모와 역할의 중요성으로 한해 사뭇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르게만 씨의 설명에 의하면 현재 함부르크에 위치한 수출관리 부서는 다인오디오사의 전체적인 제품 라인업에 대한 대외적인 이미지 마케팅 관리는 물론, 수출과 관련된 총체적인 업무, 새로운 제품 아이템에 대한 업무, 각종 이벤트 기획업무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마케팅 업무를 총괄하는 부서로 다인오디오 사의 간판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고 한다. 한가지 의문은 다인오디오 본사가 덴마크에 있는데, 왜 굳이 이렇게 중책을 수행하는 부서를 다른 국가인 독일의 중소 도시에 개설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잠시 후 그 의문이 풀렸다. 함부르크는 독일 최대의 항만도시로 독일은 물론, 유럽 최대의 물류 기지의 역할을 하는 도시이다. 세계 각국으로 판매되는 다인오디오의 수출물량을 신속하게 선적할 수 있다는 점, 더구나 다인오디오 본사와 현지 수출관리 부서는 자동차로 3 시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물류 이동에 큰 문제가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왜 함부르크에 수출관리 부사를 별도로 개설 운영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수출관리부서에 대한 소개와 역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은 후 차량으로 이동하여 독일 국경을 넘을 수 있었고, 약 3 시간 정도 후에 드디어 덴마크 스캔더보르크에 위치한 다인오디오 본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현지에는 관리이사인 앨런 젠센 씨를 비롯한 임직원들이 따뜻이 환영해 주었는데, 훈훈한 마중과 더불어 필자는 내심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주위는 사방이 탁 트인 푸른 잔디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 주위의 자연 경관과 너무나 조화롭게 조성된 현대식 단층건물은 복잡하고 기계적으로 유추될 수 있는 스피커 회사와는 거리감이 있었다.
다인오디오 본사는 크게 스피커 연구소와 제품 개발부서를 포함하는 본사 사옥과 실제적으로 생산라인을 같이하는 공장으로 분리되어 있었는데, 공장은 본사에서 약 10 여분 거리에 있었다. 잠시 동안의 휴식이 마친 후에 다인오디오 사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스피커 라인업 향후 마케팅 전략에 대한 소개가 본사 회의실에서 진행되었는데, 상당히 인상적인 프리젠테이션이었다.
다인오디오사는 1977 년 월프리트 에렌홀츠가 창업했으며, 처음에는 OEM 스피커 드라이브를 제조하는 회사로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20 여년 동안 줄곧 하이 퀄리티의 스피커 유닛만을 개발, 제조하는 일에 주력해 왔는데 ‘ 세계 제일의 퀼리티 우선주의', ‘ 소비자의 음악적 만족을 위한 봉사'라는 두 가지 명제는 다인오디오의 운영철학으로 실제적인 경영전략의 근간이 되어왔다. 아마도 이런 가치관은 결국 다인오디오를 세계 톱 클래스 스피커 유닛뿐만 아니라 시스템 스피커까지도 공급하는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어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종점검 직전의 오디언스 스피커
플래그십 모델인 에비던스에 탑재되는 크로스오버 부분을 하르게만씨가 들어보고 있다.
미드레인지 유닛을 테스트하고 있는 엔지니어
각 유닛에 탑재될 보이스코일
청취실에서 맛 본 최상의 사운드
현재 다인오디오의 주력 라인은 크게 홈시어터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오센틱 피델리티 (Authentic Fidelity) 라인, 모빌 피델리티 (Mobil Fidelity) 라는 카오디오 스피커 라인을 주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직은 소규모적인 체제이지만 점진적으로 PA 스피커 시장 부문으로 진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각 라인에 따른 세부적인 매출 규모는 홈 스피커 라인이 전체 매출 중 55% 로 가장 큰 비중를 차지하고 있으며, 카오디오 전용 스피커 라인이 25%, 나머지 OEM 수출이 15%, PA 라인이 10% 정도의 규모를 이루고 있다. 관리이사인 젠센씨의 설명에 의하면 회사의 매출규모는 매해 약 22% 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1995 년도 말 이후 다인오디오는 기존의 OEM 시장에서 DIY 키트용 판매되어온 자사의 유닛 공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이러한 결정은 이 회사의 유닛을 사랑해 온 많은 DIY 매니아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 주었는데, 필자 역시 에소타 T330D, M560D 와 같은 다인오디오의 명기들을 자주 사용하는 매니아 중의 한사람이었기에 상당히 안타가운 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역으로 다인오디오 유닛을 사용하고 있는 소누스 파베르, 이글스톤 윅스, 토템, 하베스, 윌슨 오디오와 같이 다인오디오의 유닛을 사용해 온 소위 초특급 메인 OEM 회사에서는 대단히 환영받을 만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인오디오의 DIY 마켓에 대한 오픈은 전술한 회사측에서는 자사의 스피커 시스템에 탑재된 유닛과 동일한 제품이 직접 소비자에게 유입되는 셈이고, 자칫 시스템의 가치성을 희석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다인오디오측에 상당히 불만거리로 작용해왔을 법하다. 결국 마케팅 입장에서 본다면 다인오디오 측도 메인 OEM 브랜드 회사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후문이다.
여하튼, 브리핑을 마친 후 본사에 마련된 청취실과 다인오디오 사가 현재까지 생산한 제품과 앞으로 출시할 제품의 프로토 타입을 배치해 놓은 전시실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실로 그 대단한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청취실에서는 동사의 플래그십 모델인 에비던스 (Evidence) 와 초호화 물량투입형 전용 앰프인 아비터 (Arbiter), 그리고 지난 2001 년 CES 에 출품된 주니어 에비던스라는 애칭을 가진 템테이션 (Temptation) 을 한 시간 동안 자유롭게 청취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 장대한 스케일과 다이내믹한 사운드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는 국내에서의 경험과는 상이한 것으로 다인오디오의 저력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스피커 유닛의 이상 유무를 점검한다.
스피커에 부착될 무늬목. 무늬목마다 일련번호가 붙어있다.
스피커 인클로저의 압착장면
본사 현관 전시실에 배치된 각종 다인오디오의 각종 생산 파트들(에비던스 부품)
최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 감동
청취실에서의 감상을 마치자마자 필자는 하르게만 씨의 안내를 받아 공장으로 이동해 다인오디오의 제품들이 생산되는 과정을 면밀히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불과 24 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어떻게 다인오디오가 급속하게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었는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유닛에서 크로스오버 네트워크에 사용되는 파트, 인클로저를 구성하는 낱장의 MDF 에 이르기까지 다인오디오의 모든 생산부품은 일련번호가 부여된다. 나아가, 특정파트에 새겨진 이 일련번호는 각 파트의 조합으로 스피커 시스템이 완성되고, 소비자에게 전달된 이후에도 영구히 파일로 정장하게 된다.
하르게만 씨의 설명에 의하면 다인오디오의 모든 생산품들을 평균 80~126 회의 피드백 점검을 받게 되고 각 파트의 생산자의 서명에 의해 부서별로 최종점검을 받게 된다고 하는데, 재직하고 있는 근로자의 근속연수는 단순 작업자의 경우 최소 만 5 년, 사람의 손을 이용해야 하는 세심한 제작 공정에 투입되는 작업자의 경력은 최소 20 년 이상이라고 한다. 다인오디오의 QC(Quality Control) 이 대단하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왔지만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이다.
아울러 인상이 깊었던 부분 중 하나의 공장의 규모가 예상했던 것보다 대규모로 편성돠어 있고, 공장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환경이 깨끗했다는 것이었는데, 전체적인 공정 시스템을 평가해 볼 때, 다인오디오가 소유한 매뉴패처링 능력은 톱엔드 스피커 시스템을 생산하고 있는 동일 수준의 다른 경쟁 브랜드를 상회하는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역시 톱 클래스 수준의 제품이 소유하게 되는 우수성이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다인오디오 사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동안 필자의 머리 속에는 하나의 후회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 이왕 방문한 김에 염치가 없더라도 사장사장해서 에소타 트위터라도 한 조 구해올 걸” 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어떡하란 말인가. 이미 비행기는 하늘을 날고 있었고, 낙하산도 없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