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으로 만난 Ai500의 매력
무릇 모든 일에는 운명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이를 어떡하든 피하기 위해 우회하기도 하고 또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결국 맞닥트릴
수밖에 없는 일이 있기 마련이고, 이를 우리는 운명이라고 부른다.
지금 필자의 방에는 스텔로의
Ai500이 자리 잡고 있다.
매일 밤, 마일즈와 엘링턴이 찾아오고, 스트롭스와 자니 미첼이 노래하고 있다.
특히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좋아서, 요즘 몰두하고 있는 브리티시 포크 계열이 정말로
진솔하게 다가온다.
가끔 흥이 나면 EL&P의 ‘타커스’를 걸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열락의 세계가 따로 없다.
늦은 밤, 조용히 무터가 연주하는 모차르트를 들으면서 참
Ai500을 맞이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자평한다.
Ai500과는 무슨 운명처럼 엮여 있는 듯해서, 뒤통수를 한 방 맞은 기분도 든다.
생각해보면 정말로 짧은 시간에 이 기기와 다양한 인연을 맺어 지금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운명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요인들이 있다.
물론 본 기사를 읽는 오디오 애호가 모두 자택에 소유하고 있는 기기들과 이런 운명의
요소가 개입되어 있다고 본다.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어찌 수많은 제품 중에서 유독 이 기기와 인연을 맺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Ai500과 필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맺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그 부분에 관해 이야기하겠다.
우선 에이프릴을 주재하는 이광일 사장님으로 말하면, 대단한 오디오파일이라는 점이
떠오른다.
실제로 한 10억 정도를 오디오 바꿈질에 써버렸다고 할 만큼, 주변에서 이런 열정적인 분을
만나기 쉽지 않다.
이렇게 음악과 오디오를 좋아한 결과, 직접 회사를 차려서 앰프며 CD 플레이어며 스피커를
만들고 있는데, 지난 10여 년간 피와 땀을 바쳐 이룬 결정체가 감히 본 기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로 이 기기에는 이 사장님 개인의 오디오 공력과 에이프릴의 기술력이 합쳐져서
동급의 제품들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경지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애초 이 제품을 만난 계기도 남다르다.
사건의 시작은 몇 달 전 본지에 리뷰를 한 오라 노트 프리미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앙증맞은 디자인에 오디오에서 요구되는 대부분의 기능을 탑재한 이 제품은, 이번에 상당한
기능과 내부 개량으로 업그레이드되어 과연 전작을 훨씬 능가하는 퀄러티라 평할 만했다.
그러므로 대체 어떤 부분이 개선되었는지 궁금해서 연락한 결과, 간단한 인터뷰를 위해
에이프릴을 방문하기로 했다.
필자로서는 최초의 방문이라 찾아가는 길이 서툴렀지만, 아무튼 2층에 마련된 시청실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숨을 골랐다.
사실 2층의 시청실은 이 사장님 개인의 리스닝 룸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분위기다.
한쪽 벽엔 CD가 가득하고, 맞은편엔 각종 오디오 기기들이 놓여있다.
그리고 중앙에 시청용 기기들을 담은 랙이 설치되어 있어서 여러 개의 스피커를 이리저리
연결해가며 들어볼 수 있게 해놨다.
일단 마그네판 20.1이 눈에 들어왔고, B&W 802D도 보였다. 와트 퍼피 5.1도 한 구석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참, 세간에서 한몫 한다는 스피커들을 한 자리에 모은 것이다.
만일 누가 잘못 들어왔다가는 영락없이 오디오 숍으로 착각할 만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랙 중앙에 뭔가 흥미로운 제품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말하긴 뭐하지만, 그간 수많은 제품을 리뷰하고 또 써보기도 한데다가 각종
오디오 쇼를 다니다 보니, 뭔가 물건이라는 느낌을 주는 제품을 간간이 만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오르페우스 DAC, 스파이럴 그루브 턴테이블, 소닉스 스피커 등은 해외 쇼에서
먼저 보고 주목했던 제품들로, 나중에 정식 수입이 되었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최근에 만난 와디아 381, 록포트 미라, 플레이백 디자인, 윌슨 오디오
그랜드 슬램 3, 킹 코브라 케이블, 베리티 오디오 레오노레 등은 상당히 주목할 만한
제품이라 말하고 싶고, 앞으로 출시될 다질의 모노블록 파워 앰프는 핵 폭탄급의 위력을
가진 모델이라 하겠다.
그런 감각으로 볼 때, 이 낯선 물건 역시 풍기는 아우라나 느낌이 남달랐다.
직감적으로 뭔가 뇌리를 치는 부분이 있어서, 오라 노트 프리미엄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일단 이 녀석부터 들어보자고 부탁했다.
마침 마그네판에 연결되어 있는데, 정말로 한 방 먹고 말았다.
싱싱하고 준민한 음. 마치 맑고 맑은 청정호수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팔딱팔딱 튀는
모습에 바로 매료되고 말았다.
원래 마그네판 스피커들은 울리기가 그리 까다롭지 않지만, 제대로 울리려면 애를 먹는다.
한데 여기서 나오는 나긋나긋하고, 민첩한 베이스는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었다.
재즈에서 더블 베이스라는 존재는, 전체 악기들을 한 군데로 모으는 역할을 하는 바,
이 부분이 명확하게 들릴수록, 리듬감이 살고, 개개 악기들의 표정이 좋아진다.
눈을 감으면 마치 한쪽 구석에 액티브 베이스를 설치한 듯, 적당한 볼륨을 갖고 기분 좋게
스윙하는 베이스음에 그냥 빠져버렸다.
그 후 클래식을 트니, 이번에는 탁 트인 고역이 귀에 들어온다.
특히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면, 독주자의 세세한 동작이나 손놀림 등이 보이는 것 같고,
고역으로 치닫을 때의 피치 부분이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천장이 아예 없는 공간으로 느껴질 정도로, 개방적인 모습에 연신 탄복하고 말았다.
대체 에이프릴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그간 간간이 제품을 접하고, 해외 오디오 쇼에서 잠깐씩 음을 들어본 데에 불과했으므로,
이번에 자세히 물었다.
그랬더니 이런 답이 나왔다.
"그간 수출을 위해 스펙을 만드는 데에 힘을 썼습니다. 그 부분이 이제 어느 정도
해결되었으므로, 음의 튜닝에 신경 쓰고 있는 단계입니다.”
참 대단하구나. 10여 년을 연마한 끝에 드디어 음악의 세계로 진입한 것이다.
이날, 와트 퍼피며 B&W 등을 골고루 들어봤는데, 어느 것 하나 허술하게 울리는 법이 없었다.
나중에 가격을 물어보니 200만원대 중반. 상당히 합리적인, 아니 반액 세일 정도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가격표였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3천불 정도에 판매된다고 하니, 이런 느낌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후 급하게 홍콩 AV 쇼 취재가 결정되어, 삼복더위쯤 가볍게 찜 쪄 먹는 8월 초의
홍콩에 갔다.
대체 무더위가 뭔지 단단히 일깨워준 방문이라고 할까? 아무튼 실내에 있다가 밖으로 나가면
바로 안경에 김이 서린다.
사우나와 다름이 없다.
다행히 쇼는 저녁 8시까지 진행되었으므로, 취재 중간중간 Ai500이 진열된 에이프릴의
룸에 갔다.
여기서 연결된 것은 록포트의 미라. 본격파 3웨이의 스피커로, 옆구리에 우퍼가 배치된 점이
특이한 제품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밸런스나 타임 얼라인먼트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오히려 풀레인지로
듣는 듯한 일체감이 상당히 매력적인 모델이다.
이때
Ai500은 별 에이징이 안된 신품이었으므로, 첫 날부터 계속 소리가 변화했다.
처음에는 다소 딱딱하고, 거친 맛이 있었지만, 이튿날부터 조금씩 안정이 되더니
마지막 날에는 상당히 말랑말랑하고, 생기발랄한 음이 나왔다.
당시 쇼룸의 크기는 약 15평정도. 그런데 어느 곳에 서서 들어도 음이 정확히 귀에 닿았다.
참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어떤 순간에는 문 밖에 서성이며 듣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래도 음을 듣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참 대단한 녀석이구나, 마치 본인이 제작자라도 된 듯 흐뭇한 마음으로 이런 정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결정했다.
이 녀석을 새 식구로 맞아들이자고.
그간 진공관 앰프에다 혼 타입 스피커를 쓰던 필자의 방에 이 제품이 들어오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제 어떤 배필을 골라줘야 하나, 하는 행복한 고민에 휩싸인 것이다.
록포트의 미라, B&W 802D, 마그네판 20.1 등 떠오르는 스피커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과 연결되었을 때의 음을 상상한 하면 일단 기분이 좋아진다.
이래서 가끔씩 오디오를 교체할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지나친 바꿈질은 병이 되지만, 한 가지만 고집하면 권태기가 찾아온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본지에 소개된 새로운 스피커들의 기사를 탐독하며 행복하게 미소 짓고
있는데, 정말로 오랜만에 맛보는 희열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