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의 보석 세공사를 아십니까?
KTS Audio Minuet·EL84 PP
올해 말에 출간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번역서의 원고를 손질하는 작업 때문에,
분초를 다투며 살고 있는 와중에 본지 편집부의 원고 청탁 전화를 받았다.
“이번 특집에 실릴 KTS 오디오공방의 앰프를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지요.”
“박 선생님께서 맡아 주실 앰프는 미뉴엣 프리앰프와 EL84 푸시풀 앰프입니다.”
“예?”
“왜 그러십니까?”
“아… 별일 아닙니다.”
필자는 전화를 끊으면서 이건 또 무슨 일인가 하는 의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여름부터 KTS 오디오공방의 김태성 사장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필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반 웨스턴 일렉트릭의 91B 리플리카 프로젝트를 끝낸 그가 맞바로 도전한
웨스턴 일렉트릭 86 파워 앰프 리플리카 프로젝트 또한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들었는데, 본지 편집부로부터 난데없이
초소형 진공관인 EL84(6BQ5) 푸시풀 앰프에 대한 시청 리포트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보니, 소인국을 방문한 걸리버의 신세가 된 듯한 야릇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김태성 사장에 따르면, 자신이 앰프 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처음으로
‘제대로’ 만든 앰프가 바로 EL84 PP 앰프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초기 작품인 만큼 제작한 물량도 그리 많지 않고, 크게 광고를 하면서
판매한 적도 없지만, 애호가들로부터 의외라고 해도 좋을 만한 반응을 이끌어 낸
앰프라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이럴 때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왜 하필 EL84인가?
이에 대하여 그는 자신이 EL84 PP 파워 앰프에 도전한 계기에 대하여 이 진공관이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음색이야 이미 잘 알려져 있고, 회로 구성 또한
매우 흔한 형태이기 때문에,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앰프이지만,
어느 누구도 고급 앰프로 제작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술회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지금까지 EL84의 잠재력을 제대로 실현한 앰프를 제대로
접하지 못했던 것도 EL84 PP 앰프에 대한 도전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김태성 사장이 초기 작품인 EL84 PP 앰프는 KTS 오디오 공방의
숨은 보석 같은 존재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 이유는 김 사장 자신이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설계 당시부터 판매 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고, EL84 PP의 고급화를 선언하면서 제작에 들어간 앰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도를 투영한 결과, 이 앰프는 웬만한 EL84 PP 앰프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면모를
보여 준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언급할 것은 이 앰프에 투입된 만만치 않은 물량이다.
김 사장에 따르면, 진공관 앰프의 핵심 파트라고 할 수 있는 출력 트랜스는
웨스턴 일렉트릭 코어를 사용한 것으로서 일본에서 제작했고, 220V용 전원 트랜스는
일본 탱고 사에 주문하여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진공관 소켓은 미국산, 저항도 미국산 AB 저항을 투입했고, 콘덴서를 비롯한
주요 부품들도 가능한 한 고급품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처럼 무모하게 물량을 투입한 결과 탄생한 것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EL84 PP 앰프였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비싼 EL84 PP 앰프가 들려주는 음향은 어떠한가?
최근 필자가 영국에서 들여온 DAW·AD/DA/DDC인 새디의 PCM2·BB2-J,
벤치마크의 DAC1 USB, 린의 사라 스피커 등으로 구성된 필자의 레퍼런스 시스템에서
KTS 오디오 공방의 스테디셀러 라인 앰프인 미뉴엣과 짝을 이룬 EL84 PP 파워 앰프는
EL84 출력관 특유의 탐미주의 스타일의 음향을 소담스럽게 연출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소형 출력관인 까닭에 호쾌한 음향을 연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투명함과 온화함이 독특한 조화를 이룬 소담스러운 공간감, 음표 하나하나를
곱씹는 듯한 명료한 음색, 올이 가는 듯하지만 경질로 흐르는 법이 없는
미려한 선율선, 낙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음악의 표정을 선명하게 포착해 내는
다이내믹 등을 고급스러운 필치로 통합한 음향이 미뉴엣·EL84 PP 앰프 세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특필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마란츠 #7에서 라인단을 독립시킨 라인 앰프인 미뉴엣과 EL84 PP
앰프 세트의 궁합이다.
이번 시청에서 이들 앰프는 프리앰프와 파워 앰프의 이상적인 조합이 무엇인지
음향 그 자체로 입증하고 있었다.
이들 앰프가 들려주는 음향을 시청하고 있노라면, 한편으로는
프리앰프와 파워 앰프가 저마다 담당하고 있는 영역을 분명하게 책임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1+1=2’라는 등식 관계를 뛰어넘는
화학적 통합을 이끌어 내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 결과 이들 앰프는 필자가 시청하는 음악의 장르·편성을 거의 가리지 않고,
긴장감과 우아함이 흘러넘치는 깔끔한 선율선과 다이내믹, 차라리 황금빛이라고
하면 좋을 듯한 절묘한 색감을 연출하는 음색 등을 어디 하나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 탐미주의 스타일로 연출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현악 앙상블에서는 소박하지만 미려함과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현악기의 음색이
절로 살아나고 있었으며, 피아노 레퍼토리로 오면 장중함과 확산감은 부족하지만
타건 하나하나에서 살아나야 할 견고함과 섬세한 여운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고, 성악과 합창 음악에서는 적절한 깊이를 유지하는 음색과
입술의 움직임 사이의 균형이 잘 잡힌 음향이 마치 잘 그린 인물화를 보는 것처럼
살아나고 있었다.
지금까지 KTS 오디오 공방에서 내놓은 미뉴엣·EL84 PP 앰프 세트를 살펴보았다.
결론을 내리면, 이들 앰프는 KTS 오디오 공방이 추구하는 생동감 넘치는 탐미주의
스타일의 음향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존재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EL84 PP 앰프는 KTS 오디오 공방의 숨은 보석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존재를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탄복할 만한 소담스러운 음향을 이끌어 내는 앰프이기 때문이다.
-월간오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