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추석을 며칠 앞둔 어느 날입니다.
손님께서 오셔서 벽에 스피커를 넣어두는 케이스를 짜두었는데
그 사이즈에 맞는 스피커를 찾으십니다.
저희한테 잘 맞는 스피커가 있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리고는 그날 너무 바빠서 손님과 상담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잠깐 기다리시라는 말씀만 드리고 다른 판매한 물건만 챙겼습니다.
손님은 자제분과 같이 계속 기다리시더군요.
틈틈이 설명을 드리면서 판매한 물건만 챙겼습니다.
그날 서너 건의 일이 함께 몰렸습니다. 직원은 다른 일로
외부에 나가있어서 돌아오면 빨리 물건을 내보내야할 상황이었습니다.
손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시면서 오히려 바쁜데 미안해하시더군요.
제가 너무 바쁜 나머지 손님 대접도 소홀했는데 그렇게 미안해하시니
더욱 죄송한 생각이 들어서 손님께 물건을 싸게 드렸습니다.
한참을 기다리며 오히려 저희를 배려한 그 손님을 잊지 못하겠습니다.
그때 사 가신 스피커가 하베스였습니다.
제가 처음 오디오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가장 많이 거래되던
스피커는 Rogers, Spendor, Harbeth였습니다.
다 영국제였고 영국을 대표하던 회사들이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회사도 있고 예전의 명성을 많이 잃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새로운 모델들을 출시하는 회사는 하베스뿐입니다.
하베스의 대표모델은 Monitor 40으로 하베스의 25주년 기념모델이기도 합니다.
어중간한 높이이기 때문에 스탠드를 고르는데 애로사항이
있긴 하지만 소리에 있어선 중후하면서 12인치의 우퍼에서 나오는
깊이감 있는 저역은 우퍼의 크기를 느끼게 합니다.
날카롭지 않은 고역은 역시 영국제다운 소리를 잘 표현합니다.
대부분이 2웨이인 하베스와는 다르게 레퍼런스 모델인
Monitor 40은 3웨이로 구성되어 있어서 짜임새는 아주 좋습니다.
대형스피커다운 면모를 갖춰서 대편성의 곡을 소화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다이나믹스의 강약과 윤곽이 분명하여
모니터 스피커다운 음질 특성이 좋습니다. 즉 모니터 40은
하베스 특유의 섬세하고도 자연스러운 음질, 고급스러운 음상을 나타냅니다.
스펙에 나타난 감도는 좀 낮습니다. 그러나 다른 하베스 스피커들처럼
구동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디자인은 가장 표준인 스피커답게 생겼습니다.
고전과 현대가 살아 숨쉰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요즘은 디자인이 너무 현란하여 집안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제품도
많으나 모니터 40은 평온한 분위기에다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따라서 어떤 그런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스피커는 언제나 담담한 모습을 느끼게 합니다.
소리도 튀지 않습니다. 물론 디자인도 너무 앞서지 않습니다.
언제나 마음으로 지켜보시는 어머니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 진가는 언제나 느긋하게 다가와 깊은 곳으로부터 느낄 수 있습니다.
속도만이 존재하는 현대에 편안함을 가져다줄 이 스피커를 권해 봅니다.
PS.
스탠드는 주문 제작한 것으로 철제 스탠드입니다.
모니터 40은 Tri-Wiring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