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스펙(Specification)

지금 우리가 빈티지라 부르는 시절, 좋은 스피커 회사는 좋은 유닛을 만드는 회사였다. 탄노이, JBL, 알텍, 젠센 등등 스피커의 명기 이전에 모니터 레드, JBL의 375나 LE-15H, 알텍 604, 젠센610 등등 유닛의 명기가 있었다. 물론 그것이 어떤 통에 들어가는가에 따라 가격이나 음질은 차이가 났다. 그러다가 하이엔드 시절로 넘어가면서 유닛 제조사와 스피커 제조 회사가 서서히 나뉘기 시작했다. 물론 과거에도 JBL 우퍼를 단 유레이나 풀레인지를 넣은 산스이 같은 것들도 있었긴 하지만, 그때는 여전히 스피커 회사는 유닛 회사라는 인식이 있었다. 아니 필자 또한 아직도 그런 인식이 있다. 몇 해 전 무척 맘에 들었으나 형편상 가질 수 없는 고가 스피커를 들었을 때, 솔직히 모두 이것저것 타사 유닛을 끼워 맞추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이상했던 기억이 있다. 그 멋진 고역을 내었던 기기가 바로 다인오디오의 실크 돔 트위터, 에소타였다. 다인오디오의 유닛은 현대 스피커에 있어서 최고봉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고급 스피커에 애용되는 유닛이다. 스피커의 사진을 보면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유닛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좋은 유닛을 만드는 다인오디오는 좋은 스피커를 만드는 회사다. 특히 포컬이나 스캔스픽 등 다른 유명 유닛도 많았지만 묘하게 내 마음에 드는 스피커엔 하이엔드 지향이면서도 차분한 소리를 내주는 다인오디오의 유닛이 예외 없이 들어가 있었다. 스피커 박스가 하나만 왔다. 한 박스에 두 개가 수납되어 있었다. 정말이지 너무 작았다. 한 뼘이 조금 넘는, 손이 큰 농구 선수라면 한 뼘 정도 될 것 같은 조그만 스피커다. 호불호의 문제지만 내가 느끼기엔 너무 작았다. 중․저가 모델인 오디언스 시리즈의 최소형 모델로, 물론 고음 유닛은 상급 기종과 마찬가지로 들어 있다. 전작인 오디언스 40의 인클로우저를 개선한 모델로, 두꺼운 MDF를 사용하여 두드려 보면 제법 묵직해서 신뢰가 간다. 뒷면에 구멍이 트위터 바로 뒤에 뚫려 있는데, 이것은 필자가 좋아하는 방식이다. 현재 다이폴 타입 스피커를 사용하고 있어서 그런지 이런 방식은 고역의 이탈감이 좋아서 음장이 비교적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많다. 이 모델은 비록 작긴 하지만 AV 스피커로는 프론트에 해당되고, 벽에 부착할 수 있는 리어용 42W와 센터 스피커 42C가 있다. 이 경우 덕트를 전면에 배치해야 되기 때문에 크기는 약간 커진다. 그래서 오디언스 42 AV용 스피커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메인 스피커가 제일 작다. 스피커 단자는 싱글 와이어링 대응으로 바나나 단자는 가능하지만 말굽 단자는 끼울 수가 없다. 다인오디오의 유닛은 저능률에 구동하기 쉽지 않기로 악명이 높았지만, 소형이어서 그런지 값싼 AV 리시버로도 충분히 구동할 수 있었다. 물론 대음량 대편성 곡은 무리가 있었지만 크기와 가격을 생각하면 이 정도 클래스에서 그걸 바라는 건 과욕이다. 녹음 상태는 좋은 편은 아니지만 요즘 인기 있는 금호 사중주단의 CD로 시청을 시작했다. 한마디로 내가 좋아하는 그런 소리가 나왔다. 최저가 모델이지만 명문가 출신다운 멋들어진 소리였다. 스펙상 주파수 대역이 다소 협대역이지만 수치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풍성한 저역이 나왔다. 사실 53Hz 이하의 저역이란 악기로는 내기 힘든, 듣는다기 보다 느끼는 부분이다. 초소형 스피커 리뷰에 흔히 쓰는, 크기를 잊게 하는 소리라는 말은 이 스피커에도 적용되는 말이지만 그 뉘앙스는 다르다. 생각보다 저음이 잘 나오고 스케일이 크다는 뜻이 아니라, 정교한 해상력과 세밀한 음장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생각보다 잘 나오는 저역을 원한다면 이 스피커보다 싸고 더 잘 나오는 스피커도 많이 있다. 하지만 부밍이 없는 탄탄한 음과 결코 모나지 않은 음을 내는 소형 스피커는 찾기 쉽지 않다. 현악의 멋이라 할 수 있는 송진내 나는 소리의 표현이 여느 소형 스피커와는 틀리다. 비록 AV용이라고는 하나 오디오 매니어용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죄송한 말이지만 AV용으로 쓰기 위해서라면 한번에 서너 편 보는 매니어가 아니라면 이 스피커보다 자극적인 소리가 낫지 않을까 싶다. 비슷한 가격대의 인티그레이티드 앰프와 CD 플레이어라면 가장 선택하기 힘든 300만원대 조합도 훌륭히 소화해낼 만하다. 재즈의 경우 역시 선명하게 작열하는 심벌과 약간 육감적인 톤이 아주 좋았다. 자극적이고 쏘는 소리와는 품격이 다르다. 감히 소형으로서는 만능이라고 할 만하다. 공간이 좁고 주머니가 가벼운 오디오 메니어에게는 적합한 스피커다. 또한 다인오디오의 고 가 유닛을 사용하여 저가 스피커를 만드는 회사가 없으므로 어찌되었건 자사 유닛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타사보다는 가격 경쟁력에 있어서 우위다. 아는 분이 린 클래식에 엮을 소형 스피커를 부탁했는데 한번 들고 가 봐야겠다. 이 기기라면 될 듯싶다. 10여 년 전 몇 달 간 과외하면서 모은 150만원을 들고 용산에 나가 도통 맘에 드는 스피커가 없어서 다시 돌아온 기억이 난다. 그땐 왜 이렇게 좋은 스피커가 없었을까? 수많은 현대 하이엔드 기기의 바탕에 바로 다인오디오의 스피커 유닛이 숨어 있다. 다인 유닛을 장착한 최저가 모델이라는 점에서 이 스피커는 보급기로 분류하기보다는 하이엔드로의 입문기라고 해야 될 것 같다. <신우진> - AUDIOPHILE 2000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