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앰프의 영원한 레퍼런스 마크 레빈슨 프리
MODEL VER.
마크 레빈슨(Mark Levinson)/ LNP-2 EQ Preamp/ No. 26(S)L ALL Discrete Preamp
마크 레빈슨 프리앰프 신화의 출발
‘마크 레빈슨(Mark Levinson)’ 이라는 브랜드는 지난 십 수 년간 최고급 오디오를 칭하는 대명사로서 사용되어 왔지만, 이처럼 신화에 가까운 마크 레빈슨의 절대적 위상과 경이적인 명성은 최고급 트랜지스터 프리앰프의 고성능, 고음질 성가에 의존한 바가 크다.
특히 고품격 하이엔들 지향한 마크 레빈슨 최초의 성공작이라면, 오늘날까지도 그 놀라운 특성과 고음질을 인정받고 있는 LNP-2(L) 프리앰프를 들 수 있다.
1973년 개발되어 1975년부터 정식으로 발매되기 시작했던 LNP-2 프리앰프는 트랜지스터 식 하이엔드 프리앰프의 출현을 알리는 원점이 되었으며, 이후 등장하는 수많은 마크 레빈슨의 명기들에 절대적인 성능과 음질의 완성도를 추구하는 마크 레빈슨 사운드의 기술적 원형으로서 작용하였다.
결국 마크 레빈슨은 유례없는 고특성을 이룩한 프리앰프 LNP-2 의 성가와 평판을 바탕으로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로서의 기틀을 잡은 셈이다. 후에 마크 레빈슨이라는 브랜드는 하이엔드 프리앰프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되지만, 기실 마크 레빈슨의 초기 성가의 대부분은 그 당시 산업용 아날로그 회로의 출중한 디자이너였던 ‘리차드 바우엔(Richard Burwen)’의 기술 경험이 결정적인 바탕이 되었다.
마크 레빈슨의 초기 설계자, 리차드 바우엔(Richard Burwen)
바우엔 연구소의 VU306 웨스턴 미터를 채용한 전원부 분리형으로서 130㏈에 이르는 디이내믹 레인지와 0.005%이하를 유지하는 극저의 고조파 디스토션이라는 놀라운 특성을 앞세운 마크 레빈슨의 프리앰프 LNP-2는 기실 마크 레빈슨의 기술 협력자인 리차드 바우엔의 기술적 노하우를 집결시켜 완성한 것이다.
후에 마크 레빈슨이 회사를 떠난 뒤, 법정 싸움에 져서 자신의 이름을 더 이상 자신의 오디오 브랜드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때에도 ‘첼로(Cello)’라는 새로운 브랜드로 재기할 수 있게끔 기술적 바탕을 제공해준 사람 역시 바로 리차드 바우엔이었다.
리차드 바우엔은 전자 회로 전문 설계가로서 활약해온 오디오 엔지니어로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다음 벨 연구소 산하의 스펜서 케네디 연구소에서 다년간 기술자로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1961년에는 독립적인 ‘바우엔 연구소(Burwen Laboratories)’를 창립한 뒤 주로 전자 제품의 회로기술을 연구하였는데, 전자 회로의 자동화 시스템 분야의 풍부한 연구 실적을 쌓아왔으며, 한 때 메디컬 일렉트릭의 우주 계획에 참여하기도 했다.
1970년경 AES 총회에서 리차드 바우엔은 ‘전자 회로의 잡음 제어 시스템’ 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바로 이것이 마크 레빈슨의 의뢰에 의하여 개발하게된 LNP-2 및 LNC-2의 모태가 된 기술 바탕이었다.
본래 리차드 바우엔은 극저의 잡음만을 발생시키는 전송 및 증폭 회로 기술을 연구한 전자 회로의 잡음 제어 시스템을 적용하여 LNP-1 프리앰프 및 LNC-1 크로스오버를 제작한 바 있는데, 특히 이 LNP-1 프리앰프는 LNP-2가 발표된 이후 AES 지(誌)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마크 레빈슨의 첫 번째 명기, LNP-2
결국 1970년대 초반 마크레빈슨 사운드의 성공적 출범은 LNP-2 프리앰프 및 LNC-2 크로스오버 디바이더 등을 통한 바우엔 연구소의 적극적인 기술 지원을 바탕으로 한 셈이다. 오디오 사상 거의 최초의 모듈러 증폭단을 채용한 LNP-2나 LNC-2는 로우 노잊 프리앰프(Low Noise Preamplifier) 2와 로우 노이즈 크로스오버(Low Noise Crossover)2의 이니셜인데, 이는 바우엔 연구소의 기술 경험을 배경으로 리차드 바우엔이 개발해내 각기 1975년과 1976년에 마크 레빈슨의 모델로 선보였던 프리앰프들이다.
마크 레빈슨은 이 두 모델의 성공에 힘입어 전혀 새로운 개념을 가진 초 고급 하이엔드 오디오의 새로운 장르를 열면서 일약 미국 최고의 하이엔드 프리앰프 메이커로 급부상하게 된다.
마크레빈슨 프리앰프의 오리지낼러티
초기 ML 시리즈로 대변되는 마크 레빈슨의 초창기 프리앰프 모델 라인은 그야말로 하이엔드 트랜지스터 앰프의 구조와 형식을 결정해 가는 발전 과정이였다고 할 수 있다.
고특성 정밀도와 완벽한 내구성이라는 업무용 기기의 틀을 기본적으로 고음질을 담아냈던 당시 마크 레빈슨의 독창성은, 그 놀라운 음질에서뿐만 아니라 디자인의 면모에서도 전례가 없는 하이엔드 프리 앰프의 규범을 실현하고 있었다.
19인치 랙 마운팅 타입의 전면 패널 사이즈를 비롯하여 슬림 라인으로 늘씬하게 마감된 외장 디자인의 골격과 검정색 아노다이징의 두터운 알루미늄 섀시 구조 그리고 검정 패널에 대비시키고 있는 화사한 화이트 톤의 놉들에 이르기까지 마크 레빈슨 특유의 디자인으로 대변되는 마크레빈슨의 오리지낼리티는 그대로 하이엔드 프리앰프를 상징하는 표본으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마드리갈(Madrigal) 체제의 마크 레빈슨
1985년 1월 ‘마드리갈 오디오 연구소(Madrigl Audio Laboratories, Inc.)’로 회사 명칭을 바꾼 뒤, 마크 글레이저를 중심으로 새로운 경영진에 의하여 주도되었던 마크 레빈슨은 제2의 발전을 시도하게 된다. 마크 그레이저가 이끄는 새로운 마크 레빈슨은 초기의 발전과 전성기를 넘어서서 마드리갈 체제의 조직적 기획력과 합리적 제조 및 경영 관리를 바탕으로 다시금 제2의 도약과 최고의 황금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마크 레빈슨의 새로운 주인으로서 마크 글레이저는 1985년 전자회로의 권위자인 케빈 버크(Kevin Burke)를 영입하여 NO.20 시리즈의 눈부신 성공을 통해서 본격적인 마크 레빈슨 사운드의 화려한 전성시대를 구가하게 된다.
하이엔드 프리앰프의 정점(頂 點), No. 26SL
마드리갈의 마크 글레이저(Mark Glazier)는 1985년 ‘마크 레빈슨’의 브랜드를 합법적으로 전격 인수하면서 미국 제일의 앰프 메이커이자 최고의 하이엔드 브랜드로서 마크 레빈슨 사운드를 이끌어 왔다. 물론 이는 마크 레빈슨의 기술과 평판의 후광을 배경으로 한 것이지만, 그 성공의 이면에는 정상을 유지할 수 있는 마드리갈 자체의 기술 자산과 개발 경험을 축적시킨 마크 글레이저의 비상한 역량과 새로운 엔지니어 케빈 버크(Kevin Burke)의 강력한 기술이 뒷받침된 것이기도 하다.
1988년 마드리갈의 마크 레빈슨은 마크 글레이저의 기획력과 케빈 버크의 기술 역량을 바탕으로 지금까지도 가장 우수한 하이엔드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마크 레빈슨의 간판 급 프리앰프 NO.26을 완성해냈다. 다시 1991년에는 NO.26을 업그레이드한 테프론(Teflon)소재 기판(PCB)채용의 NO.26S(L)을 발매했다.
이로써 마크 레빈슨 사운드는 제2의 전성기이자 황금기르 구가하며 아날고륵 하에엔드 사운드의 정점에 도달하게 되었다.
NO.26(L)프리앰프와 NO.26S(L) 프리앰프는 과거 리차드 바우엔의 회로 기법과 마크 레빈슨의 프리앰프에 대한 감각적 기획력을 배경으로 하여 새로운 회로 기술자 케빈 버크의 정교한 기술력이 부가되어 한층 세련된 디자인과 더욱 개선된 고해상도 음질을 자랑한다. 본래의 모델은 RCA 동축 라인 케이블과 커넥터를 사용하지 못하는 레모잭(lemo-jack)의 불편함과 내장 포노단 및 밸런스 입력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곤란함이 있었으나, 후에 마지막 생산 노트 모델은 RCA단자를 장비하여 선보이기도 했다.
마크 레빈슨 NO.26S(L)은 스레숄드 FET 10/e 및 제프롤런드 코히어런스 1시리즈2(초기 구형모델)와 더불어 지금까지도 미국 하이엔드 프리앰프를 대표하는 간판 모델 중의 하나로서 확고부동의 위치를 점해오고 있다.
- HIFI 명기백선(김종룡 저)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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